새해가 밝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죠. 각자 세운 계획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미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시인 나태주는 그의 수필집 “너를 아끼며 살아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루의 무게를 잘 견뎌낸 당신에게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2025년, 참 고생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질문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가?”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일, 사랑, 꿈”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리고 내일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학창 시절, 3년 동안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하죠. 그때 그는 세 가지 꿈을 꾸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시인이 되어 예쁜 여자와 결혼해서 공주에 살아야겠다”는 꿈입니다. 칸트가 제시한 행복의 조건처럼 첫 번째 시를 쓰는 것은 그에게 일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예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으니 사랑도 이루었습니다. 세 번째 그는 현재 공주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꿈을 이루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다시 중학생에게”라는 시를 씁니다.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아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 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살다 보면 버스를 놓칠 수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잘못한 것도 없이 힘든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버스가 오기 때문에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어른이 된 나태주가 중학생 나태주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죠.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일, 사랑, 꿈” 세 가지를 모두 가진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부모된 우리가 자녀를 바라보는 그 눈으로 하나님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하나님은 매를 들고 서서 우리가 잘못하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이것 밖에 못했어,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꾸짖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우리가 평안하길 바라십니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진심을 아는 것만으로 우리는 큰 힘을 얻습니다. 든든한 아버지의 응원속에 새해도 열심을 내어 봅시다. 아버지의 기쁨이 되길 축복합니다.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