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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을 보면 ‘죄(sin)’에 대한 다양한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인단어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일 것입니다. 그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기준에서 벗어난 상태 또는 행위를 가리켜 죄라고 하죠. 그 외에도 ‘과실’을 뜻하는 ‘파라토마’, ‘불법’을 의미하는 ‘아노미아’, 불순종을 뜻하는 ‘파라코에’ 등 다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죄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죄의 개념이 명확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꽤 오래전에 옥스퍼드 주니어 사전에서 죄에 대한 동의어를 없앴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죄’라는 단어 자체를 아예 없애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사전에 죄와 관련된 동의어가 가득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이 단어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기에 사전에서도 하나 둘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왠지 비난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죄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면 ‘실수, 잘 못, 다름, 안타까운 선택 또는 중독’과 같은 단어로 사용합니다.

오늘날 죄의 또 다른 표현은 ‘병’입니다. 죄가 병이 되는 순간 우리의 잘못은 사라집니다. 도둑질은 죄입니다. 그러나 도벽이라는 질환 뒤에 숨어 버리죠. 심지어 극도의 심신미약에서 저지른 범죄를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감형해주기도 합니다. 

사전에서 ‘죄’와 관련된 단어를 없앤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라는 단어가 사라져도 죄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애통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죄로 인한 애통함이 없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라는 풍성한 복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죄를 인정했을 때 찾아오는 복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도망치고 회피하고 남에게 잘못을 돌린다고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죄의 심각성을 인정하면 용서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그 음성을 듣는 복된 주일이 되길 축복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5:4]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