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우리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갖고 싶은 것이 없어서라기보다, 오히려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질문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큰돈을 들여 산 물건이 노트북(Laptop)이었습니다. 노트북 하나를 사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노트북이 몇 대나 있어도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자연스레 눈이 갑니다. 노트북만 그럴까요? 차도 사고 싶고, 집도 사고 싶습니다. 그런데 차를 사고 집을 사면, 그때는 바라는 것이 없을까요? 더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은 그렇게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힐 것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긴 채 인생을 살아가죠.
그래서 우리는 인간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가정을 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다들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시끄럽게 소리치는 그를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10:51]
바디매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셔서 한 질문이 아닙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런 질문을 바디매오가 들어 본 적이 있었을까요? 그 누구도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바람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의 곁을 지나가시며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것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며 관심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 앞에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건강도, 자녀의 성공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의 신앙을 붙들고, 믿음으로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실 때, 부활의 생명으로 오늘을 살게 해 달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