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아모르 파티(내 운명을 사랑하라), 이런 말들이 베스트셀러 작품에 그리고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대중 가요의 노랫말로 쓰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라틴어를 몸에 세길까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삶에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죠. 아모르 파티, 늘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지만 실패도 아픔도 결국 내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후회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느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들었습니다. 늘 오빠와 비교를 당하며 자랐던 딸이 대학생이 되어 학교와의 거리 때문에 자취방을 부모님께 구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자취방이냐”며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실랑이 끝에 화가 난 어머니는 “나가려면 짐을 다 가지고 나가라”며 모진 말까지 하죠. 그런데 어느 날 결국 딸이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어머니는 그 길로 딸과 연락을 끊어 버립니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지나, 그제서야 어머니는 경찰서에 가서 딸을 찾기 위해서 실종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딸에게 더 큰 상처가 되죠. 왜냐하면 지금까지 딸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종이 아니라 독립을 했던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한 딸은 오빠와 비교 받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연락을 계속해서 피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상담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줍니다. “7년 동안 멀어졌다면, 앞으로 7년 동안 울면서 기다릴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이 어머니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예쁘게 말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한 것이, 욱하는 마음에 화를 낸 것이 결국 깊은 후회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돌로 치려 하는 그 순간 여인은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꿈많던 어린 시절 이런 삶을 꿈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8:11]
예수님은 그녀를 후회와 실망의 자리에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정죄했지만, 예수님은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시간에 불과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또 후회하게 될까요?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