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많이 불렀던 찬양이죠.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초등학생 무렵, 어른들이 손을 들고 이 찬양을 부르실 때면 뜻도 모른 채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그 나이에는 “하루하루 살아요”보다 “하루하루 놀아요”가 더 어울릴 때였지요.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찬양의 원곡 영어 제목은 “I know who holds tomorrow (누가 나의 내일을 붙들고 있는지 나는 안다)”입니다. 내일은 모르지만 누가 내일을 붙들고 있는지는 안다는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는 찬양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에 늘 불안해합니다. 연세대학교 이동귀 교수님의 책 “네 명의 완벽주의자”를 보면, 사람들은 완벽한 삶을 꿈꾸지만 오히려 그 완벽주의 때문에 실수할까 두려워 시도조차 미루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직 오지 않은, 실체가 없는 막연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릴 적 저는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줄지어 가는 개미들 앞에 나뭇가지를 놓아보고, 흙더미를 쌓거나 물웅덩이를 파서 길을 막아보기도 했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였지만, 개미의 입장에서는 생사가 오가는 천재지변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호기심에 우리의 인생길에 장애물을 두시는 장난꾸러기 같은 분이시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두렵고 막막하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성경은 하나님을 “미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미쁘다’는 헬라어로 ‘피스토스’ 곧 ‘믿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아빠는 가장 신나는 놀이기구입니다. 비행기처럼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기도 하고,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회전그네를 태워주기도 합니다. 안전장치 하나 없어도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아빠에게 온몸을 맡깁니다. 아빠를 온전히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도는 아빠는 결코 그 손을 먼저 놓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미쁘신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어 두려운 바로 그 순간에,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더 꽉 붙잡아 주십니다. 내일을 알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일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알기에 평안하시길 축복합니다.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