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나라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말과 함께 이름도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일본어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35년은 긴 세월입니다. 그래도 끝이 났으니 다행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이상화 시인이 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면 독립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바람과 암울했던 현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무력으로 들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들과 함께 봄까지 빼앗긴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대한의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사상과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상의 사원들이 도시 곳곳에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우리가 기도한다고 변화가 일어날까 하는 낙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꿈꾸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마음으로 70년의 시간을 보냈을까요? 시편 137편 말씀은 그들이 눈물로 그 긴 세월을 보냈다고 전합니다. 바벨론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비옥한 땅에서 그들은 눈물로 70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70년이면 세번 세대가 바뀌는 시간입니다. 처음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이 1세대라면,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2세대입니다. 그리고 2세대가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을 3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1세대와 2세대가 볼 때 3세대는 바벨론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1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2, 3세대가 남았을 때,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막연한 바람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과 같은 일이 하나님의 주도하심 가운데 결국 이루어졌습니다. BC 516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BC 445년,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이 땅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