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에 끝이 있을까요? 욕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욕심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욕심이 ‘죄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죄를 낳는다고 하지요. 아담과 하와는 뱀의 어떤 말에 넘어갔을까요? 바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피조물이 조물주가 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유혹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무리 욕심을 내어 보아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시편 39장 6절에 보면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세 번째는 욕심에는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장 8절 말씀입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예전에 참 재미있게 보았던 TV 프로그램 가운데 “정글의 법칙”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정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불을 피우는 것이더군요. 그다음 잠자리를 마련하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부터는 음식 하나를 먹어도 더 맛있게 먹고 싶어 하더군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요리 재료 가운데 하나가 기름입니다. 튀기면 다 맛있지요. 그다음은 바로 라면 수프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할까요? 콜라도 생각나고, 디저트도 생각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오감은 만족을 모릅니다.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스스로를 높여 “내가 왕이 되겠다”며 전차와 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아도니야는 아쉽게도 왕위를 동생에게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왕이 되고자 했던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도니야의 꿈을 단순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만약 아도니야가 결국 왕이 되었다면, 우리는 그를 포기를 모르는 사람으로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끝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압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야망일까요? 그 경계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꼭 왕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마음에는 저마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꿈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지 않다면, 아무리 간절히 바라던 것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저는 사랑하는 아보츠포드 한인장로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19:21]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