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되기까지 많은 시험을 치렀지만, 가장 중요한 시험은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이었습니다. 당시 입학 정원은 270명이었고, 평균 지원자는 1,100명 정도였습니다. 경쟁률이 약 4대 1에 이르다 보니, 주변에는 재수는 물론 네 번씩 도전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신학 공부는 처음이었습니다. 시험 준비마저 늦게 시작한 탓에 잠잘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집 가까운 대학 도서관에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이들은 약사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저도 더 오래,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약사가 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목사가 되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운 과목은 서양철학사였습니다. 수학을 전공한 제게는 무척 낯설고 어려운 공부였습니다. 하루 네 시간만 자며 공부해도 제대로 준비하여 시험을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당시 부모님께서는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저도 아버지가 되고 보니,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됩니다. 힘들게 공부하는 저를 보며 “오늘 하루는 푹 자고 일어나 공부해라.”라는 말씀을 여러 번 삼키셨을 것입니다.
힘겹게 공부하는 자녀를 보며 안쓰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묵묵히 뒤에서 기도하며 응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시험이라는 산을 넘어야 자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의 삶에 힘겨운 광야를 허락하실까요? 그 광야를 지나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혼자 걷도록 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19:4]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날개로 업듯 자기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를 허락하신 것은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서도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를 지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길에서 우리를 업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녀의 수고를 지켜보며 기도하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힘겨운 광야를 지나고 계십니까? 눈앞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
담임목사 이신효 드림


